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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진 이혼이유,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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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진 이혼이유, 충격

 

홍여진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홍여진, 그녀가 오늘 인생타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자신의 이혼이유와 남편에 대해 터러놓았다. 또한, 이날 홍여진은 가슴아픈 가족사도 밝혀 호제가 되고 있다.

 

홍여진은 1979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이 여배우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이기에 고생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홍여진, 그녀가 털어놓은 인생이야기는 역시나 많은 굴곡과 아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배우, 홍여진은 1979년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그녀는 미국 이민 간지 1, 2년 밖에 안 된 초짜여서 영어도 그때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여진 이혼이유, "남편, 벗는 게 대수라고"


홍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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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쓰러져 바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여진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부동산 아니면 보험회사를 전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20살부터 30대까지 보험쪽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로써 화려한 삶과는 동떨어진 생활전선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홍여진은 빨리 결혼해 서른 전에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급하게 무작정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사람의 인간성, 됨됨이를 떠나 모든 조건이 이 사람이 결혼할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결혼후, 홍여진이 은행 계죄를 열려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융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홍여진의 전남편이 홍여진 몰래 돈을 빼쓰고 신용카드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여진의 남편은 무직에 집도 없었고 카드빚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갑상선암에 걸렸고, 미국에서 집을 담보로 1억원을 대출받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홍여진


그렇게 홍여진가 남편이 생화고를 겪던 시절, 한국에서는 에X영화가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홍여진도 출연제의를 받았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에X영화가 예술이라며 홍여진에게 촬영을 종용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여진은 내가 영화 찍으면 당신이랑 안 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고로 인해 결국 에로영화를 찍었고, 출연료로 카드빚을 갚아줬었다고 발혔다.

 

홍여진


홍여진은 에X배우, 이혼녀라는 타이틀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홍여진은 "죽으려고 했으면 벌써 죽었지 싶었다. 남자와 이혼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겠다고 생각할 때 죽고 싶었다. 암 걸렸을 때보다 더 죽고 싶었다. 30대에서 40대를 계속, 그러다가 유방암에 걸렸다. 내 과거가 지워진 것 같은, 30여년 평생이 지워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뒤 3년 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투병기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중년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울더라. 내가 자가 검진하는 법을 항상 얘기했는데, 만지니까 멍울이 잡혔다고 하더라. 차일피일 미루느라 안 가고 6개월이 지나 병원에서 나오는데 말기라고 하더라. 그 다음부터 어떤 프로그램이든 건강 프로그램에서 유방암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은 무조건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 1명이 그걸 보고 생명을 건져낼 수 있다면 난 지금도 나간다"며 울먹였다.

 

홍여진

 

배역의 크기와 상관 없이 연기를 하는 자체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연기란 생존을 넘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홍여진은 "작년까지는 활발한 활동이 없었다고 한다솔직히 노년에 모아둔 것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나. 연금만 모아서 하루하루 보내야 하나 할 정도였다. 올해 들어 많이 바빠졌다. 다행히 드라마도 들어오고 홈쇼핑도 들어온다. 굉장히 알찬 나날, 이게 정말 감사한 거구나를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홍여진 가슴 아픈 가족사


홍여진

 

홍여진은 제작진에게 "엄마는 유부녀였다. 아빠를 만나 날 낳았지만 이북에 남편과 애 둘이 있으니 호적이 정리가 안 된 상태였을 거 아니냐.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았으니 엄마와 아버지는 정식 결혼한 게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 가족이 반대했다. 어느 집이 애 둘 딸린 여자에게 장가를 보내겠냐. 날 아버지 집에 보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엄마가 원망스러웠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엄마라도 안 보냈을 거다. 자기 딸을 두고 또 딸을 낳는데 누가 보내겠냐"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에 대해 찾아봤다. 그 집에도 아이가 셋이 있다더라. 난 원래 성이 백씨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동생(삼촌) 호적에 올린 거다. 난 어렸을 때 삼촌이 아버지인 줄 알았다. 엄마가 어릴 때 날 삼촌 네 집에서 자라게 했다. 엄마는 떨어져 있었다. 집에서 절에도 많이 가고 굿을 많이 했는데 어떤 스님이 그랬다더라. 이 딸과 오래 살려면 둘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같이 있으면 둘 중에 하나가 죽는다고 했다더라. 엄마가 삼촌네 집에서 자라게 한 것도 미웠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했다. (나이 들고 보니) 날 떨어뜨린 것도 엄마에게는 큰 사랑인 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홍여진

홍여진



홍여진은 사생아로 자란 과거와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다른 두 명의 언니에 대해 털어놓았다. 북한 출신인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으로 두 딸을 낳았고 신발을 사기 위해 잠시 남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게 홍여진 어머니는 실향민이 되어 더 이상 딸들(홍여진의 언니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홍여진의 아버지를 만나 자신을 낳았지만 아버지 가족의 반대로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여진과 어머니 둘이서 지내야 했지만 곧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게 된 사연을 고백했다. 홍여진은 어머니가 딸과 함께 살면 죽는다라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나를 외삼촌 집에서 살게 했다. 호적 역시 외삼촌의 딸로 되어있다라고 말하며 가슴 아픈 가족사를 밝힌 것이다.

 

홍여진


홍여진은 평생 북한에 두고 온 두 딸을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언젠가 만날 언니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당첨되지 않아 방송으로 지켜보며 많은 눈물 흘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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