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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가수 은희 남편, 해녀가 된 딸 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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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은희 남편, 해녀가 된 딸 키미

 

가수 은희 남편, 해녀가 된 딸 키미

가수 은희 남편

 

전남 함평 폐교서 갈옷 본격 제작

딸은 해녀학교 졸업 해녀로 변신

돈과 명성보다는 자유로운 삶이 더 중요해..

 

102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가수 은희가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오늘 출연한 은희는 70년대 다시 꽃반지 끼고란 곡을 힛트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이다. 가수 은희는 연예계 은퇴 40년만에 오늘 근황을 전해 많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가수 은희는 은퇴 후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사랑해’, ‘꽃반지 끼고’, ‘등대지기’, ‘연가등의 명곡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가수 은희(68), 그녀는 3년 동안 짧고 굵게 활동을 하고 돌연 연예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40년이 넘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며 각광 받는 감물염색 디자이너로써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수 은희 남편


1970년대 초반 18세 나이로 통기타를 들고 가요계에 발을 디딘 은희는 맑은 음색과 청순한 외모로 등장하자마자 당시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다. 당시의 이미지와 실력과 인기를 혹자는 지금 시대에 비유해 ‘70년대 아이유라고 말하기도 한다.

 

은희의 데뷔곡이었던 사랑해1972년 첫 번째 남북적십자회담장에서 남과 북 인사들이 함께 합창을 했을 정도로 상징성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파병 용사들로부터 일주일에 한 가마니씩 팬레터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3년 동안 무려 37장의 레코드를 발매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은희는 말 그대로 박수칠 때 떠났다.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을 더 완성하고 싶었고, 이것이 연예계 활동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가수 은희 남편


1971'꽃반지 끼고' 앨범을 발표하면 7만장의 앨범을 판매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가수 은희씨. 그 해 MBC 10대 가수상 여자가수 부문 신인상까지 거머쥐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녀가 1974년 결혼 후 2년 뒤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한 뒤 10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제주로 돌아온 그녀는 '백악관'이라는 미용실을 개업한다. 3년 뒤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토털코디네이션 업소인 스톤 아일랜드를 개업해 지금은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

 

그러던 은희씨는 '봅데강'이라는 상표로 감물을 이용한 천연염색을 연구하고, 감물로 염색된 원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로 변신한다.

 


은희씨는 "미국에서는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해 수석으로 졸업을 하더라도 원단회사가 뒷받침이 안되면 일을 할 수 없다""그래서 저마다의 원단을 찾아 나서는데 제주에 돌아와 갈옷을 보고는 '바로 저거다'하면서 온몸에 소름 돋을 정도로 전율이 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두심


이후 서울에서 갈옷 제품을 판매해 오던 은희씨는 2002년 홈쇼핑에 지인인 고두심씨가 출연해 갈옷을 판매하면서 갈옷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에 열린 한일문화교류전에 한국을 대표해서 참가했는데 그녀가 제작한 옷들이 아시아의 다른 전통의상 제품을 누르고 매출 1위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갈옷 디자이너로 명성을 넓혀왔다.

 

이러면서 갈옷을 산업화 하기 위해 2003년에 전남 함평군의 한 시골마을 폐교에 민예학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갈옷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은희는 두 번의 사업 실패 끝에 외양간 옆 폐가를 수리해 사는 형편까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은희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철저한 준비를 거쳐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또한, 일본 진출도 시도하며 전통 우리 옷의 재발견·재해석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가수 은희


은희는 지난 2002년 전남 함평 폐교를 작업실, 살림집, 각종 문화 공연장으로 개조해 살고 있다고 한다. 무려 7천 평의 대저택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그 곳에서 남편과 농사를 지으며 자유인으로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근황도 전했다.

 

그곳에서 16년째 햇빛과 바람과 이슬로 감물염색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천으로 옷, 모자, 구두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 진출까지 준비중이라고 한다.

 


은희는 좋은 것만 기억한다. 나빴던 일은 하나도 기억인 안 난다. 아니, 아까워서 기억할 시간도 없다. 또 하나의 시작이다. 참 설렌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음 장은 어떻게 쓰일지 내 인생도 참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은희, 감물염색의 본고장 제주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가수 은희


'감물염색의 본고장이고 고향인 제주에 왜 이런 곳을 만들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은희씨는 "제주의 특산물 중인 하나로 갈옷을 홍보하고 있지만 염색원료로 쓰이는 감나무가 많지 않아 대량생산이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제주의 환경과 비슷한 곳을 찾기 위해 전국 40곳의 폐교 중 함평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제주자치도에서도 이런 상황을 파악해 갈옷을 산업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답했다.

 

해녀가 된 딸 키미

 

가수 은희 딸


최근 그녀의 딸인 김키미(32)씨가 해녀학교를 수료하고 해녀가 되어 물질 작업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은희의 딸 김키미씨는 "글을 쓰기 위해 제주로 다시 돌아왔는데 소라·전복 등을 채취하기 위해 생사를 걸고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바닷속 삶을 느껴보기 위해 해녀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딸을 지켜보는 은희씨는 "현재 제주에는 해녀인 키미가 들어갈 수 있는 바다가 없는 상황인데 젊은 세대가 돈을 벌기 위해 물질을 하지는 않는다""해녀들도 후세에 무언가를 물려줘야하는데 물질적인 것이 아닌 그녀들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정신적인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해야 될 시기"라고 말했다.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봐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다. 현재, 은희의 딸 키미는 제주도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작가의 길을 걷고 있고, 아들 이는 인디밴드, 이종격투기 등 미래 비전을 찾고있는 중이다.

 


가수 은희 남편, 한양공대 출신, 민주화 운동 이력의 자연인

가수 은희 남편


은희의 자유로운 삶이 가능했던 것은 남편 김화성(66)씨 덕분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귀국 후 한 모임에서 남편의 도사같은 외모에 강렬한 첫인상을 받았고, 이후 김화성 씨가 사물놀이, 무농약 농사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든든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남편은 본래 한양공대 출신의 인재로 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학생운동을 했고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자유인'의 삶을 택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또한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고 수련해 안동 하회탈 만들기, 활쏘기, 택견 등의 고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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